불암산에 묻힌‘이등병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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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에 묻힌‘이등병 김영호’
  • 서울로컬뉴스
  • 승인 2016.10.1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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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정암계곡에 돌비석만 남아
정암사묘비

무성했던 숲이 이제 물들기 시작하는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은 서울의 북방에 병풍처럼 쳐져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특히 서울둘레길이 완성되어 시작 구간인 수락산 불암산에 주민뿐만 아니라 많은 인파가 산책에 나서고 있다.

숱한 시민들의 발자국에 반질반질해진 드러난 돌비석이 정암사 계곡 둘레길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불암산을 근거지로 유격대 작전을 펼친 육사생도들의 호국활동과 겹쳐 정밀조사가 필요하다.

돌비석이 발견된 곳은 불암산 제5등산로인 불암공원에서 정암사로 올라가는 초입, 둘레길과 만나는 길에서 정암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다. 계곡에는 선녀탕 또는 옥녀탕이라고 불리는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져 물이 많은 여름철에는 물놀이하기 적당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주민들이 몰리는 곳이다. 등산로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그 길에 숱한 사람들의 발길에 반질반질해진 돌 하나가 유독 하얗게 드러나 있다.

돌 위에는‘이등병 김영호 학사 묘 필승’이라고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체로 보아 명필의 붓글씨는 아니지만 급히 못으로 긁어 판 것보다는 세밀하게 드릴로 새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여름 이 돌비석을 발견한 윤영록씨는“물이 좋아 이곳에서 놀다가 지인들에게 자랑했더니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종남씨가 주변에 명문이 있다고 찾아보라고 해서 발견했다. 전쟁 때 육사생도들을 중심으로 불암산 호랑이라는 유격대가 활약했는데, 그들 중 고립된 이들이 새긴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같이 흥미를 가지던 정순현씨가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단을 확인해봤는데 김영호 이병이 10여명이 넘고, 전사 후 일계급 특진을 한 일병까지 포함하면 70여명이나 된다. 누군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낙오된 육사생도 등 28명이 중심이 되어 적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활동을 벌였다.

육사10기(생도1기)는 1950년 7월 임관 예정이었고, 11기(생도2기)는 50년 6월 1일에 입교했다. 전쟁이 터지자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고 소총수 직책으로 포천방어전에 투입되었다. 큰 피해를 입고 이튿날에는 태릉으로, 또 다음날에는 망우리를 넘어 한강 이남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철수명령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제10기생 김동원 생도 등 10명, 이름을 알 수 없는 11기 3명, 7사단 장병 7명(부사관 2, 병사5)이 불암산 일대에서 유격 활동을 감행하기로 결의했다.

불암산유격대

이들은 불암산 주변 동굴들을 근거지로 이용하고 불암사 주지스님의 지원을 받아 퇴계원보급소 공격, 창동초등학교 수송부대 기습, 북괴군 훈련장 기습작전을 수행했다. 수락산 은거 중에 인천상륙작전이 실행되고 유엔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북괴군이 퇴각하며 주민과 물자를 북으로 후송한다는 소식을 듣고 9월 21일 내곡리 주민구출에 나섰다가 강원기 생도를 제외한 나머지 전원이 계급과 군번도 없이 전사했다. 별내 방향의 석천암 인근에 이들이 은거하던 호랑이동굴이 있다.

돌비석의 필체로 보아 전시에 대검 등으로 급히 새긴 것은 아니다. 전사했더라도 후대에 다시 찾아와 기계로 새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규격을 갖추진 않아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설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휴전 이후에 사망한 병사의 묘비라고 하기에는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윤영록씨는 “비석이 있는 곳이 무덤이 아니라 무덤에 있던 돌비석이 계곡을 정비하면서 석축을 쌓기 위해 이곳으로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돌비석을 검토한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곽일송 교수는 “육군 기록정보단까지 조사해 보았으나 군번 또는 생몰연대 등의 추가적인 정보 없이는 이 명문에 나온 분의 신상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필승’조국을 위해 바쳤을 장병의 충성이 불암산 계곡에 잠들어 있다.
<노원신문=백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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