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과정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인문학의 시도
상태바
통일 과정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인문학의 시도
  • 광진투데이
  • 승인 2016.10.18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군교수/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김종군 교수/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분단 70년이 넘어선 지금까지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사명이 '통일'이 아닌 적은 없었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치는 상황이다. 통일만 되면 지금까지 드러난 분단체제에서의 모든 부조리와 상처, 갈등은 일순간에 사라질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에 다가가는 연습을 지금껏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남과 북,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동의로 통일에 합의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고민이 많지 않다. 영토의 분단을 걷어내고 서로 섞여 살면서 하나의 체제가 구축되었을 때 통일체제는 순항할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다분히 회의적이다. 영토와 체제의 통합은 지극히 피상적인 통일의 단면일 수 있다. 실상 통일체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큰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통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개인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었다는 사실에 남북 7천만이 한동안 열광할 것은 분명하다. '동포애'로 서로를 보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은 어떠할 것인가? 70년 넘게 적대적 시선으로 상대를 보아왔고, 서로 다를 것이라는 이질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입장에서 남과 북의 주민들은 서로를 길게 보듬을 수 있을 것인가?

갈등의 요인들이 하나 둘 드러날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굳이 그 상황을 상상하지 않더라도 국내에 2만 9천이 넘게 섞여 사는 탈북민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돌아보면 어느 정도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질화는 있어도 적대성은 없었던 조선족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도 비슷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통일체제 속에서 구성원들의 서열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본토에 거주한 남과 북 주민·재중조선족 등의 코리언 디아스포라·결혼 이주나 귀화한 다문화 가정 등을 일등국민·이등국민·삼등국민으로 차등하는 시각들이 팽배할 수 있다. 특히 북한에서는 우리의 다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이 노골적인 상황에서 통일의 주체가 된 국민들 사이에 서열화 논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 과업은 실질적인 통일체제를 구축했는가를 진단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법적으로 주민들을 서열화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사회 통합의 법적인 장치들을 올곧게 제정한다고 해도 그 준수 여부는 여전히 사람의 문제로 남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마음이 결여된 상태에서 법이나 규정이 사회 통합을 온전히 주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서적인 측면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회 통합을 이끌어내는 방안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분단체제 속에서 우리는 상호 비난과 적대를 일삼는 갈등에 길들여진 상태이므로, 이러한 정서적 적대성을 해소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온전한 통일이 가능할 것이다.

정서적 적대성은 분단체제 속에서 가해진 전쟁과 학살, 국가폭력 등이 개인과 공동체에 끼친 상처와 공포감에서 기인한 분단 트라우마를 바탕에 깔고 분단서사로 표출된다. 분단서사는 개인의 차원에서 비롯되지만 이것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사회 전체 구성원들을 잠식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분단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도 기여하면서 더욱 강도가 더해진 분단서사들이 재생산되기도 한다. 결국 분단 트라우마의 치유 없이는 분단서사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며, 정서적 적대성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분단서사를 넘어선 사회 통합을 위한 서사가 요구되는 구조이다.

통일의 과정에서 사회 통합의 본질이 될 정서적 통합을 위한 장치로 통합서사의 사회적 확산에 대해 고민할 때이다. 70년 분단체제 속에서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주입되어 굳건한 틀을 갖춘 분단서사를 극복할 통합서사가 통일의 시점에 자연스럽게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체제 속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또 다른 탑다운 방식의 통합서사 확산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그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요구되고, 관 주도의 시책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부응할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일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버텀업(botoom-up) 방식의 통합서사 확산 노력이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정서적인 측면에 호소하는 것이다. 분단 트라우마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분단체제 속의 피해자들이 구술의 형식으로 상처를 증언하도록 하고 이를 경청하면서 그 고통에 공명하는 가운데 치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개인적 차원의 고통의 연대가 가능한 증언을 통합서사로 보고, 이를 모아서 출판이나 기사화하는 사회적 담론화 과정을 거친다면 공동체 차원의 고통의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통합서사에 담긴 고통에 공동체가 연대하는 가운데 사회적 통합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질 것이다.

통일의 과정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다양한 통합서사를 발굴하고, 이를 출판·영화·드라마·웹툰 등의 대중적인 통일인문콘텐츠 형식으로 개발하여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노력들이 각 분야에서 본격화되기를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