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맥파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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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맥파문학상 수필부문 최우수상 작품
  • 김정민 기자
  • 승인 2023.10.17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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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녀의 '2023년 여름'
남양주 생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광진문인협회 회원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빗물은 가슴에서 출렁인다. 쉼 없는 파장에 넘쳐 흐를 때까지 비는 계속 내린다. 태풍이 온다는 전조현상이다.

지난달 폭우로 쓸린 사람들 이야기가 뉴스를 채웠다. 폭우에 울던 산이 무너져 내려 농촌 사람들의 터전을 비질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물과 산이 만나 불 못지않은 괴력이 되었다. 흔적없이 사라지거나 부서진 삶의 터전은 전쟁으로 인한 상흔 못지않았다. 흘러 내려온 산에 덮인 것이 터전만은 아니었다. 피곤을 눕힌 목숨을 찰나에 쓸고 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묵직한 슬픔에 망연자실해 하늘만 우러렀다.

무심하다는 말을 삼키지 못한 채 낯선 풍경에 눈시울이 붉었다. 평생 일구어온 삶의 터전을 더듬었다. 물에 잠긴 일 년 농사가 둥둥 떠 있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은 형벌에 가깝다. 떠내려갔거나 떠 있거나 흙더미에 묻힌 그것들은 이제 농사의 의미가 되지 못한다. 땅을 다독여서 해 뜨고 지는 때까지 일구어 갖가지 씨앗을 파종하며 쉼 없이 가꾸었을 농작물이다. 꽃 피고 열매 맺는 동안 시름은 잦아들고 가을 추수를 꿈꾸며 희망을 보았으리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없었다. 어쩌면 숨구멍이 없는 곳에서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애절한 마음으로 산을 파헤치고 파헤쳤다. 사람의 손으로는 바닥을 볼 수 없는 산이 누워있다. 죽음은 늘 예상치 않게 다가와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사연 없는 사람도 죽음도 없다. 잘못이라면 부지런히 땅을 일구며 일개미처럼 산 것뿐이다. 농사 지으며 겪는 애환을 이웃과 나누고 다독이는 정이 아니었다면 웃을 일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된 농번기에 분주히 들녘을 누벼야 할 때면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서로 덕담을 건넸다. 말 한마디의 힘이 웃음이 되고 희망이 되는 걸 농부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 터다. 그런 이웃을 잃는 슬픔과 마주하는 일은 고통이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앞에 고개를 떨구었다. 가을 나뭇잎보다 쉽게 져버린 운명 앞에 우리는 가슴이 아팠다. 자연이 성을 내면 언제든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슬픔을 묻고 산 자는 또 살아야 할 운명이기에 누운 산을 세워야 한다. 혼자의 힘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삶의 터전, 겨우 드러난 길 위로 행진해 오는 발걸음들이 있었다.

네 집 일도 내 집 일 같은 농촌 사람들의 터전을 덮어버린 산, 오랜 세월 비와 바람, 폭설에도 끄덕하지 않던 산이었다. 조상 대대로 병풍같이 듬직한 산을 의지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산이 왜 화가 났을까, 폭우를 머금지 않고 왜 함께 흐르는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다. 산도 늙어서 힘을 쓰기엔 한계에 이르렀던 것일까.

폭우는 그쳤다. 한 달 가까이 비와 구름 뒤에서 숨을 제대로 못 쉰 태양은 한 맺힌 듯 숨을 토해냈다. 폭우 끝으로 땡볕 더위의 시작이다. 열사병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폭우가 엉겨놓은 살림살이 위로도 햇살이 쏟아졌다. 이상 기온을 견디지 못한 열매는 물켜져 떨어졌다. 나무에 달린 것보다 떨어져 뭉개진 열매가 더 많은 과수원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바닥을 수놓은 얼룩덜룩한 것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뭉개졌다.

그런가 하면 축사 앞에서 넋 잃은 사람도 있다. 수백 마리 가축이 있던 축사는 물바다가 되었다. 황토물에 잠긴 곳이 축사였는지도 의심스럽다. 가축은 익사하거나 도망쳤다. 빠져나오지 못한 소들은 바둥거리고 있었다. 길가로 끌어낸 소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살아난 가축들은 기운을 차리기도 전에 무더위에 주저앉았다. 앓아누운 가축들은 생사를 넘나들었다.

연일 쏟아지는 햇빛이 매정하다. 무너진 산을 맞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 조금씩 형체를 되찾았다. 흙탕물에 엉겨있던 살림살이도 모양과 빛깔을 되찾았다. 집안으로 밀려든 산을 꺼내 내고 나니 벽도 바닥도 뜯어내야 했다. 폭우를 다 지워야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기다려야 할 시간이 멀다.

이웃과 서로를 다독이며 이겨내 보자고 힘을 내본다. 남 일 같지 않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들의 손길은 위로가 된다. 무너지는 게 끝이라면 삶이 얼마나 단조로운가. 다시 일어나 새롭게 만들어가는 삶이야말로 의미가 있다. 곧 입추가 문턱에 와 있으니 더위도 한풀 꺾일 것으로 기대하며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삶도 기후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래도 이와 같은 일의 반복은 없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산이 화가 난 이유를 찾았다. 산허리를 질러 보기 좋게 걸쳐놓은 길이 문제였다. 쉴 줄 모르는 개발 바람이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던 뒷산까지 번졌다. 편리 하자고 길을 닦으며 산의 숨구멍을 마구잡이로 늘이고 조이고 메꾸었다. 산은 가슴이 답답했다. 산은 울었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폭우에 산의 가슴이 열렸다.

폭우가 끝나고 땡볕 더위도 끝났는가 했는데 이번엔 태풍이다.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비켜 갈 것이라는 예측이 하루 만에 바뀌었다. 방향을 바꿔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가 내린다. 굵어지는 빗줄기는 태풍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자연재해, 인명 피해, 재해 복구라는 말이 일상이 되었다. 연속되는 재앙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폭우, 땡볕 더위, 태풍으로 이어졌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상 기온의 심각화로 우리는 어느 때보다 시름이 깊다.

2023년 여름을 보내며 생각한다. 자연을 배경으로 살면서 우리가 환경을 너무 쉽게 대하며 살아온 탓은 아닌지, 자연을 문명의 도구로 마구 써온 결과는 아니었는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장담할 수 없다. 본래 자연의 질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리면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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