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쌤의 冊世映世] 삶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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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쌤의 冊世映世] 삶은 예술이다.
  • 성광일보
  • 승인 2024.03.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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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드 VS 페라리>를 보고
김정숙 논설위원

예술은 삶을 모방하고 삶은 예술을 모방한다고 했다.

그로써 예술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되고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예술이되어 또 다시 삶이 된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라고 하면 음악이나 뮤지컬이나 연극이나 그림이나 글이나 춤이나 창작이 필요한 분야를 국한하여 말했다면 현대 사회의 예술은 경계가 없다. 침대는 과학이라고 창의성을 말하면 가구도 예술이고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도 예술이면서 운동화를 신는 것의 기능에서 창의적 색체와 디자인을 가미하면 그것도 예술이다. 그릇을 굽는 도예도 예술이요 심지어 자전거나 자동차를 디자인 하는 것조차도 예술이면서 현대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디지털 영역은 예술이 된지 오래다. 이제 우리 삶 대부분의 영역은 예술의 부분집합이다.

예술의 힘은 위대하다. 그저 사물에 불과했던 그 어떤 것이 예술로 승화하면 작품이 되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가 크다면 그것은 걸작이 되어 자본이 기웃거리는 ‘귀한 상품’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값으로 매겨지는 순간 자본은 어떤 누군가에게서 다른 누군가에게로 대거 이동한다.

예술이 자본을 추종하는 것 같지만 대거 이동의 궁극적 목적지에선 자본이 예술을 추종한다.

영화 <포드 VS 페라리>는 자본주의 국가의 대명사, 유럽과 미국이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자동차 레이싱의 영화다.

장인으로 유명한 이태리의 페라리와 자본으로 유명한 미국의 포드사가 서로가 잘 났다고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총과 칼 대신 카 레이싱으로 힘겨루기를 한다. 카레이싱으로 힘겨루기만 한다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경쟁, 승리, 투지, 자존심, 힘겨루기“ 정도의 키워드로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로 관객의 호응을 사거나 감명을 줄 순 없다. 영화가 예술로 기능하면서 가치를 더 하려면 인간 감성에 끼치는 감흥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나 골드스타 크리스천 베일과 맷 데이먼이 주연인 영화에서 자본의 고래 싸움에서 새우 등 터지는 역할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포드와 페라리라는 고래 자본이 자존심 대결을 하는 동안 그들이 열연해야 하는 역할은 따로 있다. 인간 본성과 휴머니즘, 그들의 타고난 눈빛이 말 하는 대로 그들은 그러한 역할을 해야 어울리고 관객은 그들의 눈빛 연기를 보려고 이 영화를 볼 것이다. 그래야 예술을 보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에서 그들이 맡은 역할은 관객의 기대를 저 버리지 않았다. 포드와 페라리의 카 레이싱이 자본가의 자존심에서 시작되었지만 두 주인공은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인간 행동의 위대함과 우정을 열연했다. 인간은 결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심장이 뛰고 타인과 소통하며 사랑하는 뜨거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그로써 영화는 유럽과 미국의 힘겨루기를 인간 본성과 가치, 휴머니즘, 철학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전개가 없다면 영화는 예술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예술로서 가치를 갖는 건 당연하다. 실화가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건 영화의 실제 인물이 영화에서 맡은 연기자들의 연기처럼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보여 준 그들의 본성과 철학과 역사가 미래 세대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들끓는 환경 속에서도 인간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실행한 사람들은 60년대의 자본주의 삶 속에도 여전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술이 삶을 모방했지만 삶은 또 다시 이러한 예술을 모방하며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우정, 본성을 확인하고 확장한다.

예술의 위대함이요, 인간 본성의 위대함이고 인간 삶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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