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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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상식
  • 강서양천신문사
  • 승인 2019.10.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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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과 오케스트라
이대희 원장유림한의원

며칠 전 모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기획한 학생 동아리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 다녀오게 되었다. 같은 구에 있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각 학교 내의 동아리 혹은 여러 학교 학생들이 따로 모여 만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한 팀이 클래식을 연주하는 소규모 연주회, 또 독주회를 관람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팀의 오케스트라가 한자리에 모여서 각 동아리마다 다양한 특색을 뽐내는 것을 보기는 처음인지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초등생들의 귀엽고 서툰 연주도 있었고, 처음 출전이라며 한껏 신경을 쓴 듯 곱게 차려입은 옷과 연주에 예쁨이 가득한 곡도 있었으며, 첫 출전에 처음 곡은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시작하였으나 조금씩 긴장이 가시면서 마지막 은 마음껏 연습해온 기량을 뽐내는 중학생들의 풋풋한 연주도 있었다.

114년 전통의 고등학교에서 점심시간마다 매일 연습을 한다던 남자 고등학교 학생들은 관악기 위주로 구성된 웅장하고 힘이 넘치는 연주를 보여줘서 퇴근 후 지쳤던 나의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멋진 공연을 했다. 아 거기에 중학교까지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들 공부에 학원에 바빠서 활동이 없어지자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에 따로 한 명 한 명 모인 순수한 소규모 동아리인 팀의 조금 능숙한 연주도 참 아름다웠다. 다 각각의 특색이 있고 그것을 보는 즐거움에 너무나 행복한 저녁 시간이었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팀들 속에서 어떤 팀은 몇몇의 잘하는 학생에게만 의존해서 소리를 내고 나머지 학생들은 앉아 있기만 하기도 했다. 반면 어떤 팀은 비록 소리에서 음 이탈이나 잡음이 섞이기도 했지만 잘 숙련된 연주자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제 초보티를 막 벗은 연주자를 아우르는 4~50명이 넘는 팀원들이 지휘자의 손끝에 맞춰서 하나의 소리, 하나의 곡을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한 팀과 한 곡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에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의 무게에는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학생들의 각각의 멋진 연주를 보고 있자니 한약 처방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한의대 교육 과정 중에 방제학이란 수업이 있다. 변증에 의거하여 처방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배우는 과목이다.

일반인들도 주지하다시피 한의원의 처방은 ‘單味(단미/ 한가지 약재)’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모두 알고 있는 인삼이나 녹용이나 황기, 숙지황처럼 약재 중에는 아주 유명하고 훌륭한 약재들도 있지만 한의학에서 쓰는 질병을 치료하는 처방은 대부분 한 가지 약재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한두 명의 뛰어난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의 방대하고 웅장한 연주곡을 완성시키지 못하듯 처방 역시 그러하다. 아름다운 곡을 제1바이올린, 제2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플롯, 클라리넷… 그 외에 타악기까지 여러 명의 연주자가 힘을 합쳐서 다면적이고 깊이 있는 오케스트라 곡을 완성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속 깊은 울림을 주는 것처럼 한약의 처방은 군(君), 신(臣), 좌(佐), 사(使)로 이루어져 군약은 임금으로서 병인(病因)과 주증(主證)에 대하여 주요 치료 작용을 하며, 신약은 임금을 보필하는 신하로서 군약을 보조하여 치료 작용을 증강시키고 좌약은 겸증(兼證)이나 차요증상(次要症狀)을 치료하거나, 혹은 군약의 독성을 제약하거나 없애는 등의 역할을 하고, 사약은 인경(引經/ 이 처방이 병소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고 또 혹은 약물의 한쪽으로 치우친 성질(偏性)을 조화시키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方劑學, 永林社).

이렇듯 우리가 탕약으로 복용하고 있는 처방들 역시 여러 약재들이 각각의 역할을 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음악처럼 하나의 입체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다. 단미(하나의 약재)가 1차원적이고 평면적이라고 한다면 처방은 크고 작은 혹은 끊어주고 이어주는 역할 등 다 각각 맡은 바 서로 유기적으로 아름답게 연결될 때 진장한 이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또 그렇게 처방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 곡을 아름답게 연주해 내는 숙련된 오케스트라 단원과 그들을 묶어 훌륭한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 시키는 지휘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직업적인 소소한 생각과 더불어 아이들의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노력에 한껏 황홀해 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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