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산(靈山) 가는 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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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산(靈山) 가는 길(3)
  • 성광일보
  • 승인 2024.04.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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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소설가

“지금까지 나를 기다렸다고?”남자는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때였다. 숲속에서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 걸어 나왔다. 할아버지였다.
“네 이놈! 어디 갔다 이제야 나타났느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남자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회사에서 어떻든 알아봐야 될 게 아냐! 잠이 와요? 잠이!”아내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시계는 여덟시 반을 가르키고 있었다. 
“일을 못하면 죽은 듯이 있든지, 왜 부하 직원을 때려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놔요. 도시에서 폭력이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알기나 해요? 그런데 아무 곳에도 쓸데없는 근육질을 함부로 써먹어요!”
아내는 계속 소리쳤다. 결혼 전에는 아내가 좋아했던 근육질이었다. 남자는 침대에 걸터앉아 어제 일을 생각해 보았다. 육 개월 보직해임에 감봉 처분을 받았다. 보직해임이 끝나면 어디에 배치될지 모른다. 아마도 제일 하급직에 발령받을 것이다. 
 남자는 머리를 털며 일어났다. 머릿속에 제정신이 박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정신은 어디로 간지 몰랐다. 맑고 똑똑하던 정신이 이 도시에 살면서 점점 변하여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제의 일만도 그랬다. 왜 자신의 몸에서 갑자기 손이 올라갔는지 몰랐다.

남자는 출근하자마자 과장에게 불려갔다. 선임이 출근하면 조용히 만나 사과하려고 일찍 나갔었다. 순식간 달아난 선임이 얼마나 다쳤는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Z시 사람들은 이성적이니까. 화해하면 없었던 일처럼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과장이 먼저 출근해 있었다.

“자네 Z시에서 폭력이 얼마나 중대한 죄인지 아나?”과장의 첫마디였다.
“조직을 무너트릴지도 모르는 심각한 일이야. 당신 그런 인격가지고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겠나?”
“그게 아니고 과장님…. 과장이 남자의 말을 막았다.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이선 사원이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우리 집에 왔던데,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 밤에 집까지 찾아왔겠나?” 남자는 깜짝 놀랐다. 선임이 과장 집에 찾아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사위원회에 회부할 테니 할 말이 있으면 그곳에서 하게”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인사위원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장이 올린 보고서를 중심으로 심리가 이루어졌고 선동과 모의는 언급조차 없었다. 소명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폭력은 중대한 사항이므로 어떤 이유도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시에서 아주 오래전에 사라진 폭력이고 회사에서는 설립 이래 처음 발생한 일이라고 했다. 거기다 경고의 징계를 받은 것도 더해졌다. 결과는 무거웠다. 남자는 매일 보직도 없는 책상에 앉아 Z시와 회사의 수많은 규율을 베껴야 했고, 완벽한 개체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반성문을 써내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했어요? 감정은 모두 내비리라고 했지요.”
아내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던 아내였다. 남자는 사람으로 살면서 감정을 어떻게 떼어 버릴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이 다르면 트러블이 생기고 감정을 드러내면 천박해 보인다니까”

아내는 계속 말했고 남자는 숨이 막혔다. 
“사람에게 기쁘고 슬프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는 거지. 감정을 다 빼버리면 그게 무슨 사람이야.”
“그 계량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속물이 되는지 알아? 서로 미워하고 싸움질이나 하고, 감정 때문에 질투하고 속이고 다투고 살인하며 세상의 사건은 다 일으킨다고, 알겠어?”아내가 받아쳤다. 남자는 대답했다.
“사람이 기계 부품이란 말이야?”
“한심하기는, 사람에게 지성이 있잖아. 지성이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그것도 모르는 정신을 개조하던지 가슴을 도려내든지 해야지.”남자는 밤새도록 아내와 말다툼을 했었다. 냉정하리만치 이지적인 아내였다.
“바이러스 침투도 그래요. 팀장이 그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전산 팀에 의뢰해 경고를 받아요?” 남자는 아내의 날카로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 카페에서 일부 팀원들이 속삭이던 말도 생각났다. 선임인 이선이 주도하고 있었다. 
“십여 년을 살아도 이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다니. 정신병원에 가서 머릿속을 개조하던지 해야지.” 아내가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남자는 아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남자 팀의 EDI(전자문서 교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업무가 마비되었다. 누군가 바이러스를 투입시킨 것 같았다. 남자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해킹 방지 팀에 의뢰해 샅샅이 뒤져 봤지만 외부 침투 흔적은 없었다. 팀 내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누가 어떻게 침투시켰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의 실수거나 관리 잘못 외에는 달리 변명할 길이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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