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詩마당] 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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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詩마당] 계 단
  • 성광일보
  • 승인 2024.03.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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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도 없는 길
할머니가 계단을 오른다.
고개를 숙이고 쓰러질 듯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계단을 오른다.

종아리가 미끈한 아가씨가
또각또각 계단을 오르고
키가 큰 남자가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무거운 가방을 멘 학생들이
털썩털썩 계단을 오른다.

어떤 계단은 너무 높아
디딘 발자국을 모으기도 하고
한겨울 골바람에
작은 몸을 움츠려도 보지만
가끔은 햇살이 내려와
포근히 감싸는 계단

어머니는 계단을 오를 때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디라고 했고
아버지는 오르는 계단보다
내리는 계단을 조심하라 했다.

눈이 쌓인 겨울날
나는 내려갈 계단을 천천히 헤아리며
계단 앞에 홀로 서 있다.

허성열시인, 성동문인협회 회장
허성열
시인, 성동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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