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4 그저 공(空)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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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4 그저 공(空)일뿐
  • 김정민 기자
  • 승인 2022.04.05 0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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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수필가⋅문학평론가⋅문학 강사⋅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대표저서; 가위바위보⋅반딧불 반딧불이⋅스타 탄생의 예감⋅영화 쏙쏙 논술 술술⋅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카페 정담
수필가⋅문학평론가⋅문학 강사⋅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대표저서; 가위바위보⋅반딧불 반딧불이⋅스타 탄생의 예감⋅영화 쏙쏙 논술 술술⋅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카페 정담

집에서 가까운 호숫가를 걷고 있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사색에 잠겨있다. 어른이 두 팔 정도 뻗으면 서로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도 왜가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한번쯤은 주위를 살폈어야 할 상황임에도 별다른 경계 없이 같은 자세로 서 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혹여 삼매에 빠진 분위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와 그 사이엔 약속하지 않은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러는 동안 나 역시 초대 받지 않은 사색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저 친구는 어디서 와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일까, 짝은 어디에 두고 혼자일까, 무슨 생각에 잠겼기에 저리도 자신을 잊은 듯한 모습으로 서 있을까, 온갖 상념 속에서 그의 속마음을 이리저리 생각해 볼 때 그는 나의 존재를 의식했던지 갑자기 날개를 펴고 다른 곳으로 훨훨 날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침묵 속에 이루어진 그와의 만남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주일쯤 지난 뒤, 나는 다시 호숫가에 나갔다. 유리보다 맑은 호수에 왜가리는 없었지만 호수는 지상의 풍경을 그대로 안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위아래 풍경이 얼마나 똑 닮았는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상의 물상이 물속으로 들어가 깊은 수행을 하는 듯하다. 나 역시 호수의 침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수한 집중을 통해서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그런 중에 나는 묵언 수행 중인 자연계의 사물과 하나 되어 본디의 나를 찾아보려 했다. 깊은 침묵이 이어졌고 침묵의 물면 위로 수많은 생각이 떨어지며 파문이 인다. 하지만 내 안에 나는 없고 다른 생각에 묻혀 그 본시를 잊고 있었다. 맑은 물 위로 나뭇가지 하나가 떨어지면서 파문이 인다. 수면에 일렁이는 물결은 삼매에 빠져있던 자연계의 모든 사물과 나의 진지한 모습을 완전히 흔들어놓았다. 잠시 후 수면은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한번 흐트러진 나의 마음은 좀체 안정되지 않았다.

모임이 있어서 인사동에 갔다. 은은한 차향과 잔잔한 노래가 있어서 자주 찾는 찻집에 들렀다. 그런데 그날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예닐곱 명의 여성 어르신이 이웃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큰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예전에 느꼈던 조용한 정서는 사라지고 서로 존중해야 할 경계의 벽마저 무너진 지 오래다. 우리는 정상 대화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차 마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그들의 나사 풀린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대화의 공통점은 내 말이 우선이고 다른 사람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으며 상대방이 얘기하는 도중에도 언제든지 말을 끊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말소리는 높아지고 몸동작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비슷한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분위기에 적응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은근히 다음 말이 기대되기도 하고 그들의 반응에 따라서 희락喜樂의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어둠이 깨끗하게 물들어가던 날 밤, 나는 침묵의 공간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모처럼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 가지 생각만 하려고 했다. 왜가리의 고고한 자세를 닮은 몸가짐을 가져보기도 하고, 호수와 같이 맑고 넓은 마음을 열어 보려고도 했다. 공허한 소리를 통해서 자의적 멋에 접근하려는 생활 방식이 아닌 잠잠한 상태에서 고상함을 느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이전의 생각은 또 다른 생각에 묻히고 만다. 잡념의 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게다.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여 마음을 모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되었다. 결국은 침묵을 통해서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키워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가고자 했던 희망이 무너졌다. 아무런 소득 없이 어둠이 점차 엷어져 갈 무렵, 예전에 읽었던 이규보 선생의 고시조 한 편이 떠올라 다시 읽게 되었다.

깊은 산 속에서 수도 하는 스님이 물을 긷기 위해서 우물가에 갔다가 우물에 둥근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욕심을 내게 되었다. 스님은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면서 물과 함께 고혹한 달빛을 호리병 안에 가득 담아 올렸다. 절에 돌아온 스님은 물병의 물을 독에 부으면서 금방 깨닫게 된다. 병을 기울여 보니 달 또한 오간 데 없이 텅 비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늘에 달이 뜨면 우물에도 달이 뜬다는 이치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물 안의 달빛을 긷는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물 안의 달빛을 긷겠다고 한 스님은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사색의 깊은 골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생각에 물음표를 던져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공空일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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