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나기’ 통반장이 없으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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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나기’ 통반장이 없으면 가능했을까?
  • 금정아 기자
  • 승인 2023.11.21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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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복지안전망의 모세혈관 통반장을 재조명하다.
통반장과 주민센터 관계자가 홀몸 어르신댁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통반장과 주민센터 관계자가 홀몸 어르신댁을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 1월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박 씨를 처음 발견한 것은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강 통장이었다. 골목을 순찰하던 강 통장은 우편함에 가득 찬 고지서를 보고는 동주민센터에 주저 없이 연락해 복지담당 주무관과 대상가구를 방문했다. 집에는 중장년 1인 가구 박 씨 혼자 거주하고 있었다.

가족관계가 단절된지도 오래, 치매와 우울증까지 앓고 있는 박 씨의 자력으로 밀린 월세와 공과금, 연체된 카드빚을 갚아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박 씨를 벼랑 끝으로 내몰은 것은 돈도 사람도 아닌 사회로부터의 무관심이었다.

박 씨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것은 통장이었다. 강 통장은 복지담당 주무관과 함께 상담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따뜻한 겨울나기(‘따겨’) 시즌에 맞춰 동주민센터에 성금 지원을 요청했고 내부 회의를 거쳐 지원이 결정됐다.

따뜻한 겨울나기는 관악구가 지역주민들과 힘을 모아 매년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실시하는 모금 캠페인이다.

성금 덕분에 박 씨는 밀린 월세와 공과금을 납부해 경제적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에도 박 씨는 동주민센터와 구청으로부터 밀키트 지원, 복지관 식사제공, 관악구보건소의 치매 치료 등을 제공받아 건강과 사회관계망을 회복할 수 있었다. 위기에 처했던 중장년 1인 가구가 지역사회의 관심으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강 통장은 어렵게 사는 사람 찾아 도와줄 때 통장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정말 고맙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신사동의 김 통장은 거리에서 매일같이 폐지를 수집하는 한 여성을 눈여겨보고는 대화를 걸었다. 폐지를 수집해 모은 돈으로 치매 있는 배우자와 장애 있는 자식의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 통장은 동주민센터에 이 사실을 알려 해당 가구가 성금과 지정기탁을 지원받아 경제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구는 이후에도 해당 가구를 사례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장애가 있는 자녀를 보호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등 복지안전망으로 이끌었다.

통반장들은 겨울철이 되면 더 바빠진다. 난방비, 병원비, 생활비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이웃을 찾아 나선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같은 공적 복지제도가 분명히 있지만 제도권 밖에서 도움받지 못하고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은 부지기수다. 이런 틈새 공간을 꼼꼼히 살피는 이들이 바로 우리 동네를 가장 잘 아는 통반장이다.

특히 따뜻한 겨울나기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려운 이웃에게 성금이나 물품으로 온정을 나눠줄 기부자를 찾기에도 여념이 없다. 신림동의 한 통장은 따겨가 뭐냐구요? ‘따뜻한겨울나기의 줄임말이에요. 일반 주민들은 잘 모르지만 통반장들은 잘 알죠. 지역에는 라면 한 박스, 쌀 포대가 절실한 사람이 많거든요.”라고 말했다. 통반장들이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따겨 발품팔기에 나서는 이유다.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1인 가구 비율은 34.5%이고 올해 10월 기준 관악구 1인 가구 비율은 61.6%. 다수가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집에 찾아와 안부를 묻고 안전을 살피는 통반장은 가족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관악구에서 활동하는 통반장은 3,915. 그 수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위다. 정원은 5,764명으로 현원은 정원의 68퍼센트에 불과하다. 특히 관악구는 타구에 비해 원룸, 고시원이 많아 업무 강도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악구의 통반장들은 주변의 이웃을 살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행운동의 한 통장은 고철 수집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막힌 가구를 발견하고 동주민센터와 함께 주거환경 정비와 집 청소를 도왔다. 신림동의 한 반장은 폭우로 천장이 무너진 가구에 집수리지원 사업을 연결해 무료로 수리할 수 있게 지원했다. 조원동의 통반장 3명은 함께 동행파트너가 되어 비나 눈이 많이 올 때면 반지하가구를 찾아가 살핀다.

이외에도 주민등록 사실확인, 재난 발생 사건보고, 저소득가구 실태조사, 고독사 위기가구 발굴, 그리고 기부자 찾기까지 통반장의 업무는 무궁무진하다. 관악구 관계자는 통반장이 없으면 자치구 행정은 사실상 운영이 어렵다. 지역과 이웃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남의 집 수저 개수까지 알던 시대에서 옆집 사람 얼굴도 모를 만큼 지역공동체의 해체가 심각해진 요즘 시대에, 집에 찾아와 안부를 묻고 이웃을 살피는 통반장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박준희 구청장은 통반장들이 행정이 닿지 못하는 현장과 틈새를 찾아가 지방행정과 복지안전망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39백여 명 관악구 통반장들과 협력해 위기에 처한 이웃을 찾아가는 맞춤형 복지행정서비스 제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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