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초본 금강산 그림 7점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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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초본 금강산 그림 7점 발굴
  • 강서양천신문사 강혜미 기자
  • 승인 2018.10.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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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화 성립과정, 겸재 그림 연구에 귀중한 자료/ 국학진흥원, 영양 주실마을 조운도 후손가로부터 기탁
<사진-이번에 발굴된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이 최근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5~1759)이 그린 금강산 그림 7점을 발굴했다.

17일 국학진흥원에 따르면, 경북 영양 주실마을에 위치한 월하 조운도(1718~1796)의 후손가에서 기탁한 것으로, 7점 모두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고 화폭의 크기는 각각 세로 40㎝, 가로 30㎝ 정도다.

그림마다 왼쪽 또는 오른쪽 윗부분에 ‘비로봉’, ‘비홍교’, ‘마하연’, ‘정양사’, ‘보덕굴’, ‘구룡폭’, ‘단발령’ 등의 제목과 ‘겸재초(謙齋草)’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 그림 제목과 서명만 있고 창작 동기와 감상 등을 표현한 화제(畫題)나 인장은 없다.

이번에 발굴된 겸재의 금강산 그림은 화폭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내금강의 각 명소를 부감법이나 원형의 구도를 사용해 요약적으로 표현했다. 정선 특유의 미점(米點) 토산(土山)과 수직 준법으로 처리한 바위산의 대조적인 표현과 포치는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풍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겸재는 쓸어내리듯 휘두른 빠른 붓질로 단번에 그리는 ‘일필휘쇄(一筆揮灑)’ 필법으로 유명하다.

‘비홍교’ 그림은 원형 구도를 바탕으로 윗부분에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다. 화면의 중심인 만폭동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왼쪽 부분에 장안사, 가운데에 비홍교를 배치해 놓았다.

‘단발령’이 그려진 오른쪽 부분은 무성한 숲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토산(土山)으로 묘사해 맞은편의 예리한 암산들과 대조를 이룬다. 주역의 음양 원리에 따라 대비의 조화를 생각하며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하연’의 화면 윗부분과 오른쪽은 금강산의 여러 바위 봉우리를 ‘ㅅ’ 자로 붓 자국을 내면서 수직으로 꺾는, 이른바 수직 준법(皴法)으로 표현했다.

‘비로봉’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듯한 봉우리의 공간감이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실제 경치를 그린 것이지만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산수의 본질을 꿰뚫어 자신의 창작 원리에 맞춰 재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국학진흥원은 “이번 그림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 가운데 ‘초본(草本)’ 내지 ‘조본(祖本)’의 이중 성격을 띠고 있다”면서 “겸재 산수화의 밑그림으로,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의 그림의 원형으로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 그림들을 진경산수화 양식의 성립 과정이나 겸재 그림의 구도와 필법 내지 표현에 대한 연구에 매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겸재 그림을 소장한 것으로 보이는 주실 마을에 살던 조운도는 당시 영남을 대표하는 옥천 조덕린(1658~1737)의 손자로, 조운도 역시 당시 이름난 학자로서 번암 채제공, 다산 정약용, 금대 이가환 등 근기 남인의 실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한 선비였다. 금강산 그림은 조운도가 조부인 조덕린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국학연구원 측은 “이 집안에 겸재의 금강산 그림이 전래된 경위는 문헌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조덕린이 노년에 예전 노닐던 금강산이 그리워 청하현감으로 있던 겸재가 영양 주실을 방문하자 그에게 그림을 부탁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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