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기획 소장품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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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기획 소장품 전시
  • 강서양천신문사 강혜미 기자
  • 승인 2019.09.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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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부터 <겸재 정선 ; 선경을 닮은 진경의 세계 Ⅱ> 展

정선, <인곡유거>, <경교명승첩> 중, 지본담채, 27.4×27.4㎝

(원본 소장처 : 간송미술관)

연차적으로 영인해 온 겸재 정선의 다양한 작품 한자리에

 

겸재정선미술관(관장 김용권)은 오는 9월27일부터 11월17일까지 52일간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기획 소장품 전시’로 <겸재 정선 ; 선경仙景을 닮은 진경眞景의 세계 Ⅱ> 展을 1층 제1, 2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상반기에 성공리에 개최된 ‘겸재 정선 원화 전시’에 이은 두 번째 소장품 전시로, 그동안 역점 사업의 하나로 현존하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을 연차적으로 영인(影印)해 온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

정선의 작품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대부분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여러 곳에 산재해 있어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이에 겸재정선미술관은 2009년 개관 이후 고도의 영인 기술을 활용해 연차적으로 영인 작업을 진행해 왔다. 원화에서 사용된 비단이나 종이의 재료적 특성을 그대로 살려 복제 이후에도 원화와의 대조를 통해 색채 등을 보완 작업함으로써 원화에 버금가는 정선 작품 총 127건 129점을 영인했다.

정선, <개화사>, <경교명승첩> 중, 견본담채, 31.0×24.8㎝

(원본 소장처 : 간송미술관)>

이번 전시에서는 진경산수 뿐 아니라 사의산수, 화조동물화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소품에서부터 대작까지 고루 만나볼 수 있다. 현재까지 진행해 온 정선 작품 영인본 중 타 기관에 대여해 준 작품 등을 제외한 104건 104점이 전시된다. 그동안 정선의 작품을 부분적으로만 볼 수 있어 갈증을 느껴왔던 관람자 및 연구자 등에게 원화에 버금가는 감상의 기회를 제공해 갈증을 해소케 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선이 만 5년간 양천현령(1740~’45)으로 근무하면서 강서 및 한강변의 경치를 그린 <양천팔경첩>(8점), <경교명승첩>(32점) 가운데 강서지역을 그렸거나 강서에서 바라본 강 건너의 풍광 그림 등 19점을 선정해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청풍계도>, <경복궁>, <동소문>, <목멱산>, <구담>, <사직송>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정양사>, <해인사>, <선인도해>, <세검정>, <무송관폭>, <개구리>, 서울대박물관의 <만폭동>, <다람쥐>, <기려>, 그리고 정선의 기년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화첩인 <신묘년풍악도첩>(13점) 및 서울지역의 인왕산과 북악산 일대의 경치 좋은 여덟 곳을 그린 <장동팔경첩>(8점), 중국 당 말기 시인인 사공도의 ‘시품’이라는 글을 주제로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원교 이광사가 원문을 필사한 서화첩 <사공도시품첩> 22점 등 총 104점이 전시된다.

전시 관람료는 성인 1천 원, 청소년 및 군경 500원(단체관람 시 성인 700원, 청소년·군경 300원)이며 만 6세 미만 및 만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등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 관계자는 “중장기 계획을 통해 현존하는 겸재 작품을 대부분 영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영인된 작품을 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대여해 가는 것을 보면 영인본이 연구 자료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한편 겸재 정선은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진경산수화풍을 창안한 조선의 대표 화가로, 자는 ‘원백(元伯)’이고 호는 ‘겸재(謙齋)’ 또는 ‘난곡(蘭谷)’이다. 정선이 회화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결정적 계기는 37세때 이병연 등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해악전신첩>을 그린 것이었다. 정선의 초기작은 실경산수와 회화식 전통에 근거했으나 마침내 조선의 그림 속에 조선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하게 됐다.

회갑을 넘긴 노년기의 정선은 더욱 무르익은 경지에 이르러 특히 만 5년간 양천현령(65~70세)으로 재직하며 양천(지금의 강서구)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한강변의 명승지를 그려 기념비적인 역작인 <경교명승첩>을 탄생시켰다.

이 시기는 이미 완성된 한국적 진경산수화가 더욱 원숙해진 시기라 할 수 있으며, 81세 때에는 종2품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로 승차하는 등 명예로운 만년을 보내다가 1759년 8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02-2659-2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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