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전차 종점, 기동차 노선이 왜 왕십리에 몰려 있었을까<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⑫ 왕십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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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전차 종점, 기동차 노선이 왜 왕십리에 몰려 있었을까<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⑫ 왕십리역
  • 성동신문
  • 승인 2020.11.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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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⑫ 왕십리역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역

◆ 전차 종점이면서 기동차가 통과하던 왕십리역에서 있었던 일

왕십리역 앞 넓은 마당에 햇볕이 녹아내렸다. 역 마당에 금발의 남자가 나타났다. 역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금발 남자를 알고 있었다. 왕십리에 사는 트럼이었다. 트럼은 가방을 등짐장수처럼 멨다. 키가 큰 데다 금발이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어당겼다. 

역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마개를 했다. 천을 잘라서 손바느질로 만든 입마개였다. 입마개가 없는 사람은 목도리로 입과 코를 감쌌다. 더운 여름인데도 그렇게 하고 다녔다. 트럼은 달랐다. 입과 코를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트럼을 피했다.  

트럼은 전차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로나 명동으로 나갈 것이다. 역 마당에는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동차를 기다렸다. 뚝섬으로 물놀이가는 사람들이었다. 날이 더워서 그럴까. 뚝섬으로 가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휴전 협정을 맺은 후 두 번째 맞는 여름이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사람들은 지쳐있었다. 그래서 더위도 날리고 시름을 달래려고 한강을 많이 찾아갔다. 왕십리역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멀리 가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원선 기차를 타는 사람이다. 의정부나 철원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저 양코배기 어떡할꼬. 우리한테 역질 옮기겠어.”
사람들은 궁시렁거렸다. 

왕십리 사람들에게 전염병(역질, 역병)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사람은 트럼이었다. 그 전에는 전염병을 역신(疫神)이 데려온다고 믿었었다. 트럼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환자의 침방울만 조심하면 역질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공기로 전파하는 병균을 막기 위해 서양 의사들은 마스크라는 것을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 말을 들은 상왕십리에 사는 사람이 천으로 입을 가리는 방법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너도나도 따라 했다. 역질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트럼은 입마개를 하지 않았다. 왕십리 사람들은 트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트럼이 역질을 퍼뜨리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더운 날씨에다 트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행동으로 나섰다. 트럼에게 대놓고 따지지는 못하고 역장실로 몰려갔다. 트럼을 전차나 기동차에 태우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 말을 들은 역장이 말했다.
“당신들 몰라서 그렇지, 저분 아버지가 고종을 도와서 전차를 놓은 분이요. 괜한 심술부리지 말고 물놀이나 잘하고들 오시오.”

선그라스에다 입마개를 한 젊은이가 삐딱하게 되받았다.
“트럼인지 트림인지, 콧대 높아서 따질 수 없다는 거네요. 나참, 트림 나오네. 아니지, 토 나오네. 입마개 하면 될 걸 왜 안 한대요?”
“병자 아니라서 못하고, 범죄자들 하는 거라 못하고, … 아무튼 이유가 많아. 입 막고 살바엔 죽겠댜.”

왕십리역 앞  현재 모습, 서성원 ⓒ
왕십리역 앞  현재 모습, 서성원 ⓒ

◆ 독도역으로 불렸던 왕십리역

1899년, 한성에 전차가 들어왔다. 서대문에서 청량리 사이에 괘도를 깔았다. 이것은 서양과 비교해도 앞서가는 교통시설이었다. 서양에서도 1881년에 전차를 타기 시작했으니까. 고종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강한 나라로 만들려 했다. 

왕십리역 지하철 노선도
왕십리역 지하철 노선도

그 후, 1911년에 경원선이 왕십리를 거쳐 간다. 그런데 역 이름은 왕십리역이 아니었다. '독도역(纛島驛)'이다. 독도는 지금의 뚝섬을 말한다. 

1914년, 전차 왕십리선이 들어온다. 을지로 6가에서 왕십리까지다. 이제 왕십리역은 전차 종점이기도 했다. 이때 독도역이 '왕십리역'으로 바뀐다. 

전차 노선은 경원선과 이어야 했으므로 왕십리까지 온 것이다. 이렇게 되자 왕십리 지역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가 된다. 
1932년, 새로운 노선이 또 왕십리에 연결된다. 이것은 차 모양이 전차와 조금 달랐다. 기동차 라고 불렀다. 괘도 전차였다. 경성괘도주식회사가 운영했는데 일본 회사였다.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출발해서 왕십리를 거쳐서 뚝섬으로 갔다. 1934년에는 상후원(지금의 성수동 상원마을)에서 갈라져서 광장리로 가는 길이 생겼다. 기동찻길은 일본인이 돈 벌려고 만들었다. 

이렇게 교통이 좋아지자 왕십리는 1930년 이후, 공장지대로 바뀌기 시작한다. 1936년, 경성부가 행정구역을 확장한다. 왕십리가 속한 고양군 한지면 전체를 경성부에 편입한다. 이때 공장이 크게 늘어났다. 

기동차, 1963년,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
기동차, 1963년,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
기동차, 1966년,  출처 : 서울사진아카이브
기동차, 1966년,  출처 : 서울사진아카이브

◆ 지하철 시대의 왕십리역, 시민들이 원하는 GTX 왕십리역.

1961년 이후로 전차와 기동차 운행을 폐지해 나간다. 1983년에 지하철 2호선이 왕십리에 들어온다. 1995년에 5호선이 개통되면서 최초의 3환승역이자 지상-지하 환승역이 된다. 

2012년에 분당선이 들어와서 최초의 4환승역 이라는 타이틀을 갖는다.
왕십리역은 성동구의 랜드마크로서 4개의 지하철 노선과 ITX-청춘 열차가 정차(1일 6회)하는 역사로, 부역명은 성동구청역이다. 왕십리역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전철 동북선이 건설될 예정이다. 발표했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동북선은 왕십리역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5환승역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GTX다. 과연 6환승역이 될까. 왕십리역에서 환승하는 시민들은 무척 많다. 그 시민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교통시설이라면 GTX는 왕십리역에 서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왕십리는 조선 시대에도 한양 도성으로 드나드는 사람과 물자이동이 잦았던 지역이었다. 그것이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 강점기로 이어졌다. 지리적인 조건이 사람과 물자를 왕십리로 불러들였다. 이것은 진실이다. 진실은 바른길로 가라고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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