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도시재생과 재개발 사이에서 의견 분분... 그러나 결국 ’방문객 찾아올 장기적 대책‘ 필요해 재개발 고려해야
상태바
[르뽀] 도시재생과 재개발 사이에서 의견 분분... 그러나 결국 ’방문객 찾아올 장기적 대책‘ 필요해 재개발 고려해야
  • 정소원 기자
  • 승인 2022.03.21 1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대한민국을 한 때 대표했던 전자산업 메카인 세운상가

”현재 상가의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는 이제는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과 확연히 줄어든 매출에도 불구하고 임대료는 계속해서 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정책이 바뀌기보다 장기적으로 방문객들이 찾아오면서 상인들에게는 부담이 덜 되는 정책을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윤대영 (유람케이스음향대표·세운전자상가임차인)

보행로에서 쳐다본 세운상가. 다리 옆에서 내려다본 시설들은 한눈에 보아도 낡았다.

보행로에서 쳐다본 세운상가. 다리 옆에서 내려다본 시설들은 한눈에 보아도 낡았다.

지난 2월 23일 오전 11시, 대한민국를 한 때 대표했던 전자산업 메카인 세운상가 2층은 한산했다. 2층 로비를 오가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는데, 모두 문을 열러 나온 상인들이었다. 상가를 보러 온 방문객들은 아무도 없었다. 2층과 3층으로 갈수록 아직 문을 열지 않는 점포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세운상가의 산업들을 구경할 수 있는 문화역사박물관도 열려 있었지만, 유동인구가 없다 보니 들어가서 구경하는 사람 역시 없었다. 공중보행로가 조성된 3층에 올라가 보니, 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는 다리가 있어 건물 간 이동이 원활해보였으나, 역시 사람이 한 두명 지나다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세운상가 다리 옆 확연히 노후화된 시설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최근 오세훈 시장은 2월 초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지인 을지로 세운지구와 관련해 올 상반기 중 발전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오시장이 세운 상가를 찾아 일대에 낡은 건물이 여전히 그대로 보존된 모습에 분노했다고 스스로 언급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이에 대한 상인들의 반응은 상반된다. 상권활성화를 위해 낡은 주변 지역 정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상인들의 이주 부담과 임대료 상승 부담으로 인해 재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다.

세운상가에 입점해 있는 관광버스 음향기기 전문업체 최광영 대표는 "지난번 재개발 때 권리금을 최소 1억 이상 내고 이주해 와 피해를 본 상인들이 상당수이다"라고 말하며 "비싼 권리금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줄어가고 있는데 재개발되면 임대료만 올라가 상인들 등살만 휘어질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운상가에서 19년간 오디오기기를 판매하며 종로세운상가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 사장은 "재개발계획이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상인들은 힘이 빠진다."라면서 "아무래도 건물이 40년 이상 되었으니 전선 등 노후화된 시설이 너무 많다. 합선 등의 위험에 대비해 상가시설을 보수하고 주변 지역을 정비하여 세운상가 이미지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현재 4구역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에 대한 공해 및 소음과 같은 피해에 대해 적절한 보상들을 잊지 않고 상인들에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세운상가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기계, 공구, 전기, 전자 등 상가가 형성된 곳이지만 사실상,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비계획이 새로 수립됐다.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계획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나왔으며, 특히 일명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오세훈 시장과 박원순 전 시장이 서울 정비사업을 두고 충돌한 대표적 사업지다. 주로 충돌은 재개발과 도시 재생 중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가에 대한 지점에서 이루어졌다.

오세훈 시장은 처음 서울시장을 맡던 지난 2006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고 세운상가군을 철거한 후 주변 8개 구역을 통합개발하기로 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오 시장이 사퇴한 후 당선된 박 전 시장은 지난 2014년 오 시장의 철거계획을 취소하고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간 공중 보행교 조성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는 서울시에서 대개발이 아닌 소규모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서울주택공사에서 세운상가 4구역 재개발만이 진행중인 상태다.

도시 재개발은 보통 투자수단을 위한 정책으로 이해되지만, 오시 장에 따르면 ’세운 상가 재개발‘은 ’서울 핵심 지역을 상업 활력의 공간, 자연성이 보존된 녹지 공간, 역사성이 함께 보존될 수 있는 공간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오 시장은 "10년 전 이 지역 전체를 8개로 나눠서 세운지구를 중심으로 세운상가 건물을 녹지 축으로 해서 1단계 사업을 완료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창경궁부터 종묘는 율곡로 개선사업을 통해 녹지면적이 이어지도록 했다"며 "이를 순차적으로 남산까지 넓히면 된다."고 덧붙여 세운상가 재개발이 ’단순히 부수고 경제적 가치가 상승하게 하는 것‘만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오 시장은 "북악산부터 창경궁 종묘 남산까지 녹지 축이 있고 이어서 용산공원 거쳐 한강까지 남북으로 녹지 축을 만들게 되면 서울시가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역사성을 가진, 비즈니스 타운으로도 만들 수 있다"며 "이런 방법을 제시해 놓고 퇴임했는데 지난 10년간 다 모습이 흐트러졌다"고 언급했었다.

반면 도시재생사업은 주거환경 노후화 등 쇠퇴하는 도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주민 참여를 유도하고 지역 특성에 맞게 보완하는 사업으로, 유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항만, 철도 등 핵심 사업시설을 정비하고 개발해 도시의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거나 고용을 창출하는 도시경제기반형이 있고, 지역맞춤형재생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근린재생형이 있다.

지역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거리경관을 개선하는 '문화공간조성' 및 '벽화그리기' 등이 대표적인 사업 방식으로 서울역 인근 서울로 7017, 을지로 세운상가, 동대문구 창신·수인동 일대등도 이에 해당한다. 도시재생사업이 기반이 되어 세운·청계·대림상가를 잇는 350m 보행로에서는 분명히 이로 인한 변화가 일어났다. 음향기기 수리업체와 철학전문 책방, 고무·실리콘 패킹업체와 카페·술집, 조명·전자기기 판매업체와 갤러리가 교차되며, 일명 ’힙지로‘로 불리면서 젊은 세대들의 이목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재개발에 반대하던 세운상가 최 대표조차도 ”젊은 세대가 약간 관심을 이끌었을 뿐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했다.“며 ”결국 상인들의 사정은 여전히 어렵고 장기적인 정책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악기시장의 메카 낙원상가도 결국 장기적 차원의 해법 필요해... 일부 재개발 측면이 필수적

낙원악기상가 전면과 2층 복도. 세운상가에 비해 정비된 시설이지만 방문객 없이 한산한 것은 마찬가지다.

낙원악기상가 전면과 2층 복도. 세운상가에 비해 정비된 시설이지만 방문객 없이 한산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2월 23일 오후 2시, 세운상가와 더불어 한국악기시장의 메카로 꼽히는 낙원상가에서도 손님 없이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악기를 들쳐 멘 손님들이 종종 오가기는 했으나 낙원상가 전체를 채우기엔 모자랐다. 화장실, 엘리베이터와 같은 시설은 세운상가에 비해 정비가 잘 된편이었으나, 이용하는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방문하는 손님들의 머리는 희끗희끗하여 연령층이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상가 안에선 북적북적한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가끔씩 상점 안에서 희미하게 연주하는 관악기 소리만 들려왔다.

여기서도 ’도시재생‘과 ’재개발‘에 대한 상인들의 입장은 분분했다. 낙원상가에서 20년째 일해온 대신악기 민병호 직원은 ”재개발을 하면 익선동 사례가 날까 우려스럽다.“며 ”임대료가 올라가면 장사를 아예 못한다. 익선동만 해도, 재개발 얘기 나오기 전에 한달 60만원이었던 게 현재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다. 4배나 오르는 임대료값을 재개발로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재개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반면 낙원상가에서 25년째 일해온 민병호 대성음향 대표는 도시정책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낙원생활문화센터에 대해 ”기존에 있었던 주차장을 무작정 없애고 상인들과 아파트 주민들 동의 없이 문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 것이다.“며 ”실제로 이용하는 시민들이 하루에 10명 이내인데 심층적으로 고려한 사업이 맞는지 의문스럽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차라리 기존 있던 주차장을 없애지 않거나, 낙원생활문화센터가 있는 곳에 주차장 면적을 넓혔으면 방문객들이 더 잘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실질적 삶의 개선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덧붙여 ”임대료는 걱정되지만, 장기적으로 낙원상가가 잘되려면 (합의만 잘되면) 재개발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1969년 지어진 1세대 주상복합건물인 낙원상가는 서울 무교동 음악다방 '쎄시봉'을 중심으로 시작된 통기타 음악 열풍으로 1970~80년대 국내 최대 악기 상가로 성장했다. 이 건물 4층에 있는 '허리우드' 극장엔 청년들이 몰렸고, 늘 음악과 젊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300여 악기 상점이 몰린 '악기 성지'도 세월의 공격을 견뎌내기는 어려웠다. 낙원상가는 2000년대 중반 들어 도심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 그러다 세계 최대 악기상가란 상징성 등 낡은 건물의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부활을 꿈꿨다. 그러나 현재는 도시재생차원에서 추진된 문화사업으로 기존에 있던 주차장이 없어져 방문객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마진율이 10년전에 비해 100%-150%에서 10%가 되면 다행일 정도로 상인들이 가게를 유지하기 급급한 상황인 것이다.

도시계획전문가들에 따르면,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물리적 계획뿐 아니라 복합적 면을 고려해 그 안에 실재하는 도심산업의 자재력과 지향점에 관한 지속적 논의가 필요하다. 결국 도심산업은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있는 생태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운상가와 낙운상가를 돌아볼 때 재개발이란 필수적 측면을 대책으로 고려하게 되더라도 상가에 속해있는 상인들과의 협의를 통해 그들이 재개발 이후 겪게 될 부담에 대한 합리적 조율과 대안은 필요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