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기다림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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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기다림의 여유
  • 성광일보
  • 승인 2023.04.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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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자
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지 노력하여 최선을 다한 뒤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평생 수많은 기다림 속에서 살아간다.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초조하게 하고 설레게도 하며 희망을 품게도 한다.
58년 전이다. 남편이 장손이다 보니 시어머님께서 첫아들 낳기를 은근히 기다리셨다. 나는 첫딸을 낳았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었다. 시어머님은 갓난아이가 낳는지 며칠 된 아이 같고 낯설지 않다고 하셨다. 신기했다. 나는 다만 아들딸 구별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기를 마음속으로 기다렸다. 시어머님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딸이라 마음속으로 서운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딸을 내 뜻대로 낳을 수 없지 않겠는가?

수능철이 돌아오면 부모님들은 누구나 자기 자녀들이 원하는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나도 역시 40대에는 자녀들의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손자들의 대학 합격자 발표를 손꼽아 기다린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하게 되었으니 세월이 유수와 같다.

계절에도 기다림이 있다. 봄이 되면 농촌에서 농부들은 들에 나아가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 되면 땀을 흘리며 무더위를 참고 풀밭에 잠초를 뽑는다. 가을에는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기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얼마 전 고교 동창 모임이 있는 날이다. 우리가 음식점에 들어가 앉자마자 친구가 음식이 왜 빨리 나오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려 옆 사람의 얼굴을 찡그리게 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불안한 마음으로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친구에게 인상을 쓰면서 “너는 왜 이렇게 늦게오니?”하며 짜증을 냈다.
물론 시간 약속을 어긴 사람이 잘못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늦을 수도 있다. 친구를 오래 기다린 것이 지루해서 즉시 화를 냈지만 늦게 들어 온 친구의 사정을 들오보니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빨리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이 기다림의 여유를 갖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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